015 Thursday 1998년 12월 3일

  약속된 2주간의 영어 연수 기간을 마치고 다른 키부츠로 옮겼다.(밤 10시 16분)

  아침일찍 일어나(5시 30분) 씻고 짐을 챙겼다. 6시 15분까지 밖으로 나와서 루벤을 기다렸다. 그리고 루벤 폴과 함께 짐을 실었다.

  어제밤의 모닥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주위의 낙옆들을 모아서 불씨 위에 던지고 불을 지폈다. 어제밤 일들이 떠오른다. 제비 '연'자에 아름다울 '미'를 쓰는 부산 외대 여자분과의 대화, 폼만 엄청 잡았다. 한국에 가서 부산에서 다시 만나 어제의 이야기들을 꺼냈으면 좋겠다.

죽어가는 불씨들과 함께 (사그라드는 화염과 함께)

하늘높이 떠오른 불꽃은 달빛과 함께

하나의 별이 된다.


  이른 아침의 추위를 몰아내며 활활거리는 불씨들을 뒤로 하고 짐을 실었다. 키부츠의 모든 한국인 '부루스' '나이키' '연미' 등등 모두가 배웅을 나왔다. 우리를 떠나 보낸 그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것이다.(슬퍼다, 하지만 더큰 일들을 위해 더 큰 슬픔을 위해 잠시 묻어두고, 더 큰 기쁨을 위해 애써 모른척할 뿐이다.)

  우리 앞기수 중에서 연미라는 분이 폴과 나이키에게 부탁해서 혼자 이 키부츠에 남았다는데 모두를 떠나보내고 떠나는 차를 보며 눈물을 보였다고 했다.

  루벤, Paul과 함께 Ashkol 까지 와서 버스를 타고 Tel-Aviv 까지 왔다. 그들은 면역이 되어서 태연할 수 있겠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내 인생이 끝나기 전에 다시 만나고 싶다.

  Tel-Aviv Central Bus Station에서 한참을 헤멘 뒤에야 AFULA행 버스를 찾아서 대기하다가 골라 탔는데 운이 좋아서인지 직통버스였다. 도착해서(중간에 팔레스타인 지역도 지나오고) 전화해서 기다렸다. 동양인은 우리뿐. 신기했다 우리 자신이.

  마중을 나왔고 그들과 인사하고 키부츠 GEVA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보이는 것은 사막이 아닌 산과 들, 푸르름이었다. GEVA는 Ein Hashlosha 보다 나아 보였다(식당부터). 일찍 도착해서 '사라'(발렌티어 캠프 마더 Camp mother)로부터 수건 등을 지급받고 방을 배정받았다. 점심 식사 시간에 생선 튀김과 기타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었다. 짐풀고 휴식 뒤 3시부터 주변을 구경했다. 제법 규모가 컸다. 만나는 발렌티어들과 인사를 했다. 한국인도 2명이 있었다. 그중 여자분(희수)은 내가 오고자 했던 7 월에 와서 지금까지 생활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돌아가게 된다. 지금은 이름을 다 까먹었고 내가 Phoenix에서 다시 '상종'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같은 건물의 멕시코인중 2명 알렉스(ALEX), 막스(MAX)와 인사했다.

  (기간을 자주 물어보는 걸 보니 여기가 지겨운가? 그 지겨움에 대한 것은 약간은 연습이 되었다.)

  여기 발렌티어 리드는 요하브(YOHAV). 루벤보다는 덜한 것 같다. 남아공에서 왔다고 한다. 임뽀르딴뜨 발음에 고생했지만 그래도 정이 많이 든 루벤이 그립다.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비자변경, Deposit, 용돈(1주일 70쉐켈), 등등 모든 설명을 들었다.

  낮에 잤지만 지금은 방에 박혀서 빨리 잘 분위기다. 벌써 45분이다.(30 분 동안 쓰다니) 24 시간중 30분을 일지 쓰는데 희생하다니 갑자기 아까운 생각이 든다.

  어째든 2주동안 정들었던 Ein Hashlosha와 Stage 2000울판, 같이 했던 누나들, 동생들, 특히 같이 담배피던 여자애들(그네 타고)(그네를 5명이 타고서 마주보고 앉게 되 있다. 한명이 열심히 밀면되고 그 위에 모여앉아 사아좋게 나눠피우는 담배맛, 카 죽인다), 개 '조지'(첨부-키부츠의 한놈 뿐인 암놈으로서 발렌티어들의 전폭전인 지지를 받고 있는, 얼마전 언 놈들에게 당하는 바람에 키부츠닉이 데리고 가서 유산시키고 죽일려고 했다는데 살려 주었다. 부루스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조깅때 달려드는 개때들 속에서 위험에 놓였을 때 그중 부루스를 알아보고 동료들을 설득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내려오는) , '빅도르', 모두와의 이별이 아쉽고 슬펐던 날이다.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슬픈날….

  사라의 소개로 수영장, 농구장, … 테니스장도 둘러보았다.

  결심 : 담배를 끊자.(줄이자)

  016 Friday 1998년 12월 4일

  중간에 첨부할 내용

  한국인 발렌티어(며칠 있으면 한국으로 떠날) 여자분 "희수"라는 여자분이 터키 여행을 마치고 와서 한 말 (온실의 화초는 밖에 나오지 말고 온실 안에서 자라야 된다. ) "온실의 화초는 가만히 집에 있어야 한다. 괜히 밖에 나가면 뿌리째 뽑힌다.

  오늘 일찍 일어나서 (지금 Club Mad에 가서 술마시고 춤추다 왔기 때문에 취해서 하루 일과를 뒤돌아보며 쓴다. 아침을 Ein에서와 같이 먹고 9시를 기다렸다. 8시 50분쯤 자고 있으니 사라가 와서 깨우며 옷을 받으러 갔다(신발도) 신발, 작업복을 세탁소에서 받고 정리하다가 B4 비자연장에 대해 JD로부터 듣고 한참을 기다리다 점심을 먹었다. 점심먹고 나오며 쌀을 챙겨서 희수에게 방문하여 전해주고 TV룸에서 이야기, 내일 귀국을 한다는 9개월 있었다는 사람(나중에 성함이 '오동해'씨라고 들었다.)과 몇시간 동안 이야기하며 요르단 이집트 여행에 관한 정보를 듬뿍 들었다.(메모지에 있고, 한방 여행 참조) 내일 낮에 정리해서 적어야지.

  금요일 저녁은 7시 30분에 의식이 있은 후 7시 45분에 시작된다는데 늦게 갔다. 저녁먹고 성민이와 이것 저것 이야기하다 거의 12시까지.

  영국애('Matt' 나이는 아직 어리고, 우리를 아풀라까지 마중 나왔었다.)가 Pub에 놀러가자고 데리러 왔다. Maffia보다 나은 것 같다.(훨씬)
지금 또 페이지 노래를 듣고 있는데
Pub에서 재미있게 놀다 왔다. But 영어가 안들려 의사소통이 안되어 썰렁. 피곤하다 자야되겠다. 씻지 않고 잘 것 같다. 난 필드에서 일할 것 같다. 아무데서든지 잘 지내야지. 요하브(리드)가 뭐같다니까 열심히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어디에서나 살아갈수 있는 인간도 되고.

  내 자신도 챙길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지!!

  017 Saturday 1998년 12월 5일

  오늘은 늦잠을 잤다. 눈을 뜨니 9시, 또 자다가 일어나니 11시, 어쨌든 아침을 건너뛰고 점심을 먹었다. 성민이와 둘이서 먹으로 갔다. 식사후 또 잠.

  JD가 와서 내가 일할 곳도 dish washer 라고 했다. 또 자다가 일어나 일지를 쓴다.(17시 35분. 하루종일 잤다.)

  오늘이 17일째! 이스라엘에 머무를 180일 중에서 1/12 인 15일이 지나고 1/10 인 18일을 다가가고 있다. 그렇게 보면 6개월도 금방일 것 같다. 오후에 창문 밖으로 기르기를 보았다.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제들은 요르단 이스라엘 여행 정보를 기록해야겠다.

  여정(계획)은 Geva→벳샨→요르단→홍해를 가로질러→시나이 반도→카이로(이집트 여행 남부까지)→이스라엘→Geva 순이다.

  (※ 이집트 요르단 한방 여행 계획 참조)


  지금시간 18시 13분 씻고 나서 저녁 먹으로 가야겠다.

  저녁먹고 TV룸에 갔었다. and KLM 한국 사무소와 어울넷에 보낼 Fax를 썼다. 빨리 보내야 되는데. 내일은 전화 카드도 사야 된다.

  018 Sunday 1998년 12월 6일

  오늘부터 일을 하게 된다. washing dish 라고 dinning room에서 세척기를 통과한 접시나 수저를 정리하는 일이다. 단순한 일이라서 많이 지겹다고 하는데 아직은 첫날이라 할만하다.

  아침 먹고 일 시작해서 끝내고 숙소 와서 fax 보내고 전화카드 사기 위해 돌아다녔다. 어딘지 몰라서 찾아 헤메었다. 점심 먹고 오후 일을 끝내고 돌아왔다.

  성민이랑 일 때문에 싸웠다. 나의 경상도적인 사고 방식과 여기에 이미 적응한 성민이의 사고관 과의 차이이다.

  낮잠 자고 저녁 먹으러 갔는데 배신녀 2명이 먼저 가 있었다. 저녁 먹고 옆방에서 놀다가 (요하브가 9시에 TV룸에서 보잔다고 말함) 방에 왔다. 발 씻고 TV룸 갔다가 다음주 수요일(16일) 또는 금요일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내일은 한국에 전화하고 Fax 보내야 한다.

  배신녀(judy, ki-ki)가 드디어 배신을 땡긴다고 한다. 저희들끼리 잘 살자고 다른 camp로 옮긴다고 한다. '잘먹고 잘 살아라'

  씻고 와서 공부 좀 하고 잘 계획….

  019 Monday 1998년 12월 7일

  오늘은 dish washer로 일한지 이틀째다. 아침 6시 40분에 기상하여 한국의 KLM사무소에 전화하고 식사하고 일하고 숙소로 왔다.(10시 10분)

  Fax를 보내기 위해 security office를 찾아 다녔다. 간신히 찾아서 fax를 보내는데 1장당 1쉐켈, KLM에는 잘 갔는데 어울넷에는 잘 가지 않았다. 통화중도 걸리고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뒤 전화를 했다. 원찬이가 받았다. Fax가 갔다.

  Fax 보내고 다시 확인 전화하고 집에 전화했다. 아버지가 받으셨다. 잘있다고 안부 전하고, 돌아와서 쉬다가 다시 일하려 갔다.

  피자를 먹고 나니 먹을땐 맛있었는데 피자를 구운 판이 얼마나 많은지…. 힘든 하루였고 매우 바빴다.

  돌아와서 농구를 했다. 종덕이에게 공 빌리러 갔는데 세라 (스웨덴)가 갖고 있었다. 성민이와 농구하고 있을 때 세라도 끼어서 같이 농구를 했다. 별로 잘하진 못했다.

  농구 끝내고 와서 씻고 세탁소에 갔다. 바지 1벌을 받았는데 very big. Oh! my God 이다. 50인치 바지다! And 요하브로부터 다음주 용돈 70쉐켈을 받았다.(부자다)

  저녁을 천천히 먹고 화서 쥬디와 키키방에서 이야기하다가 TV룸에 갔는데 썰렁. 별일없이 나오다 필립(브라질)에게 신문을 빌려왔다. 신문 약간 읽다가 발톱 손톱 깍았다.

  성민이와 또 한바탕 대화를 했다. 역시 격렬한 논쟁이었다. 왜 달러와 쉐켈 환전히 buy보다 sell이 더 높냐다. 외국인들 관습이 그렇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사람들 사회 관습이 그러할진대 내가 그걸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해 … so so. 인생관에 관한 얘기까지 했다. 결론은 공대생과 자대생의 차이라고 결론이 났다. 생활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사고 방식과의 차이. 평소 내 중심이었던 사고 방식에서 또 다른 사고방식과의 만남은 불꼭도 특히 많이 일어나겠지만 그만큼 따뜻하게 할 수도 있다. 서로의 사고방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평소에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계산기의 정답만이 진리라고 믿는 공대생 성민이 한마디로 연구대상이다. 나도 어느 정도 자연대를 이해했다고 하는데 서로 많이 싸울 것 같다. 외국인들과의 만남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달느 사고방식과의 만남과 둘이서 새로운 사물을 지켜보며 느끼는 것을 토론하고 논쟁한다는 것은 나의 눈, 그의 눈 그리고 둘의 화합과 불꽃이라는 제 3의 눈, 평소에 내가 바라던 세상을 보는 눈(시야)을 넓히는 일에서 위의 3가지 눈으로 본다는 것은 큰 기쁨이요 희열이다.

  앞으로 같이 지내며 싸움도 많이 하겠지만 서로에게 발전이 있고 특히 나에게는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좀더 빨리 크게 넓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빨래를 며칠 미뤄왔는데 지금 빨래하고 자야겠다.

  지금 멀리서 turkey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ps. 지금까지 소개가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지금 있는 건물은 힐튼이다. 명칭이. 힐튼 호텔과 비교해 볼까)

  오늘도 조용한 음악과 함께 잠이 든다.

  020 Tuesday 1998년 12월 8일

  오늘로 이스라엘에 온지 20일이 지나고 있다. 내가 머무를(계획상) 180일의 1/9이 지나갔다.

  오늘도 dish washer 지겨운 날이었다. 어제보다 바쁘진 않았지만 여전히 힘들다(힘든게 아니고 진빠진다.) 아침 점심 식사후 일하고 오후내내 잭과 여자 얘기(현경-잭의), 감자 얘기를 하다가 시계보니 6시 40분, 저녁 먹으로 갔다. 중간에(오후) 농구장에 JD(종덕)이와 농구하러 갔었다. 하지만 키부츠 애들이 농구 연습하는걸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오늘따라 특히 천천히 먹었고 dinning room에서 마실물을 떠 왔다. 콜보에 가기 위해 돈 들고 나갔지만 closed. 잭과 함께 주변 산책을 나갔다. 남쪽 외곽을 둘러서 서쪽으로, 멀리 아풀라 시내도 보였다. 돌아와서 TV룸에 갔다가 영화를 보는데 중간 광고가 많았다. Goast와 비슷한 TV 영화. 채널 돌리다가 9번을 보니 람보 영화 중...

  (낮에 종덕이가 CNN에서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한국이 2:0으로 일본한테 이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소식을 듣는 것이 즐겁다. 며칠 전에 대우자동차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한다는 것과 환율이 1250원대 라는걸 들었다.)

  지금은 방. 씻지도 않고 누워 있는데 기분이 별로다. 하루종일 아무일 없이 그냥 허비한 느낌이다. 외국인 발렌티어들을 사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외의 자유시간에 할 일이 필요하다. 여긴 테니스장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라켓이 없다. 아무데도 없다. 하나 살까? 한국에서 부쳐 올까? 갈등이 막 생긴다. 어떻할까???

  (다시 돌아가) 정신수양 이야기. 외국에 나온 목적중의 하나인 개인적인 정신수양이 필요하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고의 깊이를 더해가야 한다. '참선' 참선의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내 진로를 생각하고 나의 인생의 좀더 확실한 가치관을 세우고 그것을 좀더 탄탄하고 살찌워야 한다.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것보다 하나에 깊은 생각을 거치면 그 다음 단계의 사고로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발전된 사고는 나의 가장 큰 재산이 될 것이다.

  ※ 내일 다른 키부츠로 (pub) 놀러 가기로 했다. 종덕이는 가지 못하기 때문에 부탁을 받았다.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울판 동기들도 만날 수 있을까?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 한국 KLM에 보낸 Fax가 잘 도착했는지? 내일까지 연락이 없으면 다시 보내야겠다. 씻고 와서 잘 시간이다.

  옆방의 멕시코 애들이 많이 떠들고 있다. 밤늦게 음악도 틀어놓고…. 하루 하루 써온 일지가 양이 꽤 된다. 한국에 가서 꼭 홈페이지에 올릴 계획이다.

  021 Wednesday 1998년 12월 9일

  오늘도 오전에는 비슷한 일과. 편지지에 Fax 내용을 써니 잘 안되었다.(Fax error) 시간만 허비하고 온 셈이다. 오후에 낮잠 잘려고 했으나 이야기하고 멀뚱멀뚱 뜬눈으로 보내고 저녁 먹으러 갔다.

  8시에 Ramat David(kibbutz) Pob 에 놀러 가기로 했다. 8시 5분전에 나갔는데 버스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혹시 다 가버린건 아닐까?? 약간을 기다리니 왔다.(vol.) 곧이어 버스도. 가는 길에 다음 키부츠에서 한국인 여자분에게 종덕이가 부탁한 내용을 전하고 …. 드디어 도착.

  같은 한국인들을 찾아서 이야기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인근의 한국인 발렌티어들은 거의 다 모인 것이다. 매주 오는 이유는 놀러 온다기 보다는 서로간에 정보를 주고받고 하기 위해서이다. 매주 출근 도장 찍어가며 갈 것 같다. Maffia 보다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큰 규모이다.

  ※ 여기 Geva의 vol.연령은 19∼20세. 대부분 고교 졸업하고 여행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 속에서 그들이 행하는 모습을 보고 외국 젊은이들의 문화라고 하기엔 무리이다. 아직까진 내가 보는 사람들이 그들이 전부이기에 (다른 일반적인 모습을 만나지 못하였기에) 속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자신의 중심을 세워야 겠다.

  키부츠에 돌아와서 dinning room에서 coffee time을 가졌다. 서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그 중에서도 키부츠인(식당에서 일하는 빡빡이 아저씨) (주방장인가) 정말 피아노를 잘 연주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단한 음악가) 커피와 함께 가지는 음악시간, 피아노 연주는 가히 환상적이다.

◁  LIST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