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 1999년 1월 14일∼15일 (이틀간) : 예루살렘 여행
  57일째 Thursday 1999년 1월 14일


  먼저 1박 2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잡은 여행이기에 많이 걸어다녔고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수요일 저녁 라맛 다비드에 갔다가 밤 12시 넘어서부터 여행계획을 잡았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JD로부터 예루살렘을 추천 받아 키키한테 100NIS을 빌리고 쥬디로부터 여행책자를 빌려 새벽 2시까지 TV룸에서 예루살렘 공부를 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막상 혼자 여행을 할려니 고민이 되었다.

  그 전날 야곱(Dinning-Room Member)이 이틀동안 결근한 까닭에 내가 Dinning-Room에서 일을 하고 고힌(우리끼린 그냥 "고기" 로 부른다. Kitchen Boss)으로부터 이틀간의 Day-Off를 얻었다. Day-Off 이틀 동안 키부츠 내에서 죽치느니 바깥으로 여행가는 게 낮다고 여겨진다. 여행준비를 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와서 준비를 계속 했다. 주방에 들러 빵과 물 등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JD는 벹샨을 거쳐 예루살렘 가는 경로를 추천했지만 나는 아풀라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10시 20분쯤 키부츠 출발, 거의 큰길에 도착해서 Kibbutz 차량을 히치. 노부부였는데 친절하게 Bus Station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러나 버스정류장에선.. AFULA에서 예루살렘행 버스는 아침 7시 몇 분(아마 20분과 50분 경 두 대)에 있는 버스뿐이었다. (종덕이 말대로 바로 벹샨으로 갈 걸 후회함)

  Information Center에서는 Tel-Aviv를 거쳐서 Jerusalem으로 가는 방법을 권했고, 거리나 지도상에서 가깝기는 벹샨으로 가는 방법이 나을 것 같다. 그러나 차시간이 자주 있는 Tel-Aviv가 많이 기다리지 않고 갈 수 있는 방법이라 Tel-Aviv행 버스를 탔다.(823번 버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텔아비브 여행만 하고 돌아올까 생각했지만 일단 예루살렘까지 가 보기로 했다. 일단 텔아비브 들리는 김에 예루살렘에는 늦어지지만 ISSTAKPC에도 들르기로 했다.

  갖고 간 돈(쉐켈)이 모자랄 것 같아 Tel-Aviv의 Central Bus Station 내의 우체국에서 $10를 환전(39.8NIS)했고, 쉐루트를 타고(4번 쉐루트, 요금 4NIS ; 가이드북의 3NIS에서 인상되었음), ISSTA여행사에 들러 국제학생증(ISIC, 녹색)을 먼저 만들고(수수료 : 40NIS), KPC를 찾기 시작했다. 전에 보아둔 약도의 기억을 되살려 벤 예후다 거리와 Frischmann거리, 디젠고프 광장 근처라 생각하고 행인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몰랐다. 가이드북의 Cameri라고 된 곳 오른쪽이라 생각했지만 주택가뿐이고 아무데도 없었다.

  Cameri는 극장이었고 거의 시청까지 갔다가 돌아오며 디젠고프 광장까지 왔고 분수대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계속 걸었다. 거의 한시간 반을 넘게 돌아다닌 끝에 어느 여행사에 들러 물어보니 안내책자의 Neot-Hekikar라고 표시된 곳 옆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쪽 블록을 한바퀴 돌면서 바다도 보고 Kibbutz 센터를 찾아서 들어갔지만 내가 찾던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다시 Frischmann St.18번지로 가라고 일러주었다. 바로 길 맞은편이 18번지였지만 거의 찾을 수가 없어서 그 앞에서 한참을 헤맨 끝에 왼쪽 구석에 있는 뭔가를 찾았다.

  1m도 안돼는 담벼락에 거의 바닥에 붙어 있는 Kibbutz Program Center라는 간판을 찾았고 출입구를 찾아 들어갔지만 벌써 문을 닫은 시간이었다.(거의 15:00)(-벤 예후다 거리와 프리쉬만 거리가 교차하는 사거리에서 Frischman 18번지가 있고 그 건물의 오른편(건물기준) 끝에 작은 파란색 간판과 출입구가 있다. 멀리 찾을 필요가 없다.(사진 )

  키부츠 기념 T-셔츠도 못 받고 허탈해서 해변으로 걸어나와 태양이 걸려있는 야포(Jaffo)와 지중해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모래사장을 감상하며 여유를 가졌다. 다시 쉐루트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와서 화장실(1NIS)에 들렀다가 예루살렘 가는 버스를 탔다. 학생증을 보여 줬는데 할인이 됐는지 모르겠다. 15.1NIS를 지불하고 16시에 출발 예루살렘에는 17시 정각에 도착했다 .

  저녁이라 교회는 문을 닫은 시간이었지만, 올리브 산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도 늦었지만, 일단은 Old city 까지 가기로 했다. (쉐루트를 타고 Olive산이나 Old City까지 갈까도 생각했지만 걸어서) 노르도 거리를 지나 에게드 버스 사무실을 지나고(야포거리) 마후네 예후다 시장에서 시장을 가로질러 아그리파스 거리로 갔다. 다시 한참을 걷고 거리를 가로질러 벤 예후다 거리까지 가서 구 시가지 방향으로 걸었다. 마후네 예후다 시장에는 과일, 채소와 수산물, 닭 등의 물건이 주로 팔리며 값이 싸다.

  도중에 왼편으로 조명이 밝혀진 "러시아 정교회"를 구경하고, 시청 방향으로 나와서(정원이 멋있게 장식되어 있고 분수대가 있다)... 드디어 예루살렘 Old City에 도착했다. 시청 쪽에서 신문으로 가지 않고 야포 문 쪽으로 가서 앞의 공터에 앉아 식빵을 꺼내 먹고 야포 문을 통해서 들어갔다.

  먼저 다비드 거리를 걷다가 다비드 탑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그쪽은 아르메니아인 지구) 계속 다비드 거리를 따라 걸었다. 도중에 Muristan 시장(거의 문을 닫음)을 가로질러서 Muristan St.를 지나며 Church of the Redcemer를 거쳐 지나 거리에 서니, 작은 광장이 나왔다.(Sug. Muristan Fountain 이 보이는 거리로 시장의 중심에 분수대가 있다.)

  지나는 사람들이 관광객인 나에게 오른편 구석을 가리켰다. 좁은 문 앞에 서서 위를 보니 Holy Sepulcher라고 쓰여 있었다. 들어가 보니 그 유명한 교회 성 분묘 교회였다. (Church of the Holy Sepulcher) 실은 오늘은 찾기도 어렵고 내일쯤 와볼까 했었는데 어쨌든 쉽게 찾게 되어 기뻤다. 마당을 지나 안에 들어가니 예수의 무덤이 보였고(왼편) 책에 있는 것과 똑같은 모습의 무덤 입구가 보였다.

  아담의 동굴을 내려다보고(예수의 무덤과 반대쪽에 있는데 밤이라 어둡고 그쪽은 사람들도 없었다. 사실 혼자 가면 양껏 으스스하다.) 올라와서 밖으로 나와 십자군의 문으로 나가 입구 사진을 한 장 찍고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처음 들어왔던 입구를 돌아 나갔다. Muristan Fountain을 거쳐서 Muristan St.를 지나서 유대인 지구쪽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도는 순간 멀리 올리브 산의 건물들과 교회들이 보이면서 윌슨 아치가 보였다. 잘 찾아왔다는데에 놀랐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아치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앞의 윌슨 아치와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났다.(나중에 알았지만 윌슨 아치가 아니었음)

  황금색의 바위돔과 엘 아크샤 모스크와 통곡의 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서 있는곳 계단 바로 밑에는 8개 성문중의 하나인 분뇨문이 보이며 넓은 광장이 보인다. 검색대(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금속탐지기)를 지나서 광장을 지나고 드디어 두발로 "통곡의 벽" 앞에 선 것이다. 노래가사 중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랄까!! 둘러쳐진 담을 지나서 남자쪽 통곡의 벽 입구에서 모자를 받아쓰고 벽 앞에 섰다.

  손으로 벽을 만져보고, 위를 쳐다보고 뒤로 물러나 종이를 꺼내 소원을 적었다. 마지막 부분에 "1999년 1월 14일" 이라 적고, 반을 찢어 윗 부분을 벽의 돌틈에 끼워 넣었다.(위치는 오른편에서 약 5m 지점, 머리높이의 큰 풀이 자라는곳으로, 왼편 끝에서 두 번째 풀의 약간 오른쪽 옆의 가로 돌 틈에 꽃아 두었다.) 다음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나머지 반쪽의 종이와 함께 그 소원을 적은 종이를 찾아서 맞춰보고 싶다.

  어느 노부부에게 부탁하여 기념 사진을 찍고 한참을 그곳에서 멍하니 지켜보다 나왔다. 바로 옆 수돗물에 손을 씻고 더위를 식히며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네게 많은 유대인 랍비들이 참배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 들어왔다.
올리브 산을 한번 더 바라본 다음, 근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통곡의 벽에 서서 그 옛날의 일을 상상해 보았다. 유대인들이 이 땅을 점령당한 후로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면서 신전의 파괴를 멀리서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심정. 그 가슴 아픈 조상들에 대한 열망과 원망의 눈빛, 그리고 다시 찾은 안도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내려왔던 계단을 올라온 다음 내일 계획을 짰다. 저녁 7시가 넘어 8시가 거의 다 되어 가는 시간, 내일 계획에 연계해서 오늘 남은 시간을 쓰기 위해 숙소도 알아보고. (내일은 올리브 산을 올라가고 예루살렘 구도시의 남쪽 부분과 남은 무슬림 지구를 방문하기로)

  다시 Muristan 거리까지 와서 성분묘교회를 지나서 Sug Khan Ezzeit St.로 접어들었다. 조금전 지나왔던 거리는 전체가 밤이라 조용했었는데 여기선 한창 시간이었다.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무슬림)과 시장좌판(빵, 과자, 기념품 등)과 그들의 활기를 같이 느끼며 힘을 내어 다마스쿠스 문(Damascus Gate)까지 왔다. 성문을 나가도 많은 시장 사람들과 많은 무슬림 젊은이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와서 Damascus Gate 사진을 찍고 (필름 갈고 : 사진이 거의 안나옴, 다 짤리고 ) 그들을 바라보았다.

  유대인 랍비들이 탄 버스들(보통 1번, 2번 버스)이 지나가면 버스를 향해 돌을 던지고 시위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면 버스는 신호등을 무시하고 미친 말처럼 날뛰며 도망을 가곤 했다. 불꽃을 터뜨리며 그러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지만 돌을 던지고 시위한다는게 걸렸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덧붙임 : 어쩌면 나는 가장 치열한 종교 분쟁의 장소에서 그 생생한 모습을 경험한 경우일 수도 있다.)

  다시 길을 걸어 광장을 지나 (아마도) ISSTA와 Cario Youth Hostel(착각) 방향을 지나 Hamalka St.를 지났을 것이다. 세인트 조지 대성당을 찾으러 나선 길이지만 엉뚱한 곳으로 갔다가 한참을 헤멘 끝에 Cario Youth Hostel을 찾았고 그 앞을 지나서 세인트 조지 교회로 찾아갔다. 그러나 이미 묻닫은 늦은 시간. 밖에서만 구경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교회로 들어가고 있었다.(아마도 교회에 머무는 사람) 부탁을 하고 같이 들어갔다. 사진에서 보았던 똑같은 모습의 교회 앞마당이 나왔고 교회의 앞뜰에서 구경하고 사진찍고 교회 예배당은 구경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돌아다닌 보람은 있었다.

  교회를 나와서 살라에딘 거리를 따라서 내려온 다음 헤롯문 앞에 섰다. 헤롯문 앞에는 사람이 적었으며 옆의 다마스쿠스 문의 사람들이 밀려오는 정도였다. 단순히 문에만 들렀다가 성벽쪽으로 술탄 술레이만 거리를 따라 걸으며 다시 Damascus Gate 까지 온 다음 나블루스 거리를 따라서 정원 무덤에 갔지만 역시 문 닫은 시간. 앞에만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사람들로 활기 넘치는 다마스쿠스 문앞에서 쉬었다. 이방인 혼자 많은 사람들 무리에 섞여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감상에 빠져들었지만 늦은 시간...

  Damascus Road를 걷다가 무슬림 사람들을 사귀게 되었다.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4명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숙소를 소개해 준다고 했지만 아까 보아둔 Hostel로 가기로 했다. 그들과 헤어져 EL.WAD St.를 따라 올라와 Hashimi Hostel 옆에 있는 Tabasco (정확하지 않음, 거리를 따라 약 20~30m 위쪽) Hostel에 들어가 15NIS에 가장 싼 방을 골라 들어가서 침대에 앉았다. 침대가 낡았고 가운데가 꺼져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싸구려 방에는 다시는 안간다. 특히 구 시가지 안이라서 그런데 구시가지 밖으로 나가면 같은 가격에 좀더 나은 방을 구할 수도 있다.

  Count에서 한국인 한 명을 만나서 trip(마사다) 이야기를 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마사다에 올라 일출을 보고 돌아오며 베들레헴에 들린다고 한다. 같이 가고 싶지만 현재 가진 돈이 모자란다. 가방에서 음식을 꺼내먹고, 일찍 잠을 청했다. 일지를 다 써 놓고 거의 11시 다 되어서... 약간 추워서 사용하지 않는 옆 침대의 모포도 덮음.

  호스텔에 방을 잡을 때 여권을 안 가지고 가서 출입국 카드로 대신함.

2일째

  아침 일찍(5시 10분) 잠이 깼지만 피곤해서 계속 누워 있다 5시 30분쯤 일어나 짐을 챙겨 나왔다. 오늘은 올리브 산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먼저 다시 Damascus Gate를 지나서 술탄 술레이만 거리를 따라 걸으며 헤롯문을 지났다. 이른 아침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올리브 산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

  약간을 더 걸어서 신호등에서 오른쪽으로 꺽으면 멀리 올리브산이 보이고 내리막길을 거치며 오른쪽으로 라이온 문과 키드론 계곡을 거쳐 지나게 된다. 마리아의 무덤과 만국민 교회(Church of All Nation)와 막달라 마리아 교회(Church of Marymagdalene)를 지나쳐 급경사 길을 오르며 예수가 울었던 교회(Sanctuary of Dominus Flevit)를 지났다(예수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그 붕괴를 예언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는).

  급경사길을 한참을 올라가서 올리브산 전망대에 도착했다.

  아침해가 떠오르고 황금색 바위돔을 비추고 있다. 사진을 찍고 시내를 바라보다가 그 뒤쪽 정상에 있는 Hotel 쪽으로 갔다. 일곱 아치의 호텔이다. 옆으로 난 문을 지나며(검문) 뒤뜰로 잔디밭을 지나가서 막 떠오른 해를 필름에 담았다. 썬글라스를 카메라 렌즈 부위에 대고 쪽었다. 뒤쪽(동편, 아랍인 지구) 시내를 사진 찍으며 뒤뜰의 나무숲과 테니스장도.. 모든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승천 교회(Chapel of Christ's Ascension ; 예수가 승천한 올리브산, 그때 생긴 발자국 흔적이 있다고 함)와 주기도문 교회(Church of the Paternoster ; 전세계 77개국 언어로 기도문이 적혀 있다는)를 사진에 담았다.

  예루살렘 구 시가지를 다시 한번 찍고 그 두 교회쪽으로 갔지만 내가 너무 이른 시간에 갔기에 문을 닫았고 그 앞에서만 사진을 찍고 급경사길을 내려 왔다. 시간이 좀 지났는지 만국민 교회는 이미 문을 열었고 교회의 지붕과 내부에 들어가 간단한 예배를 보며 모자이크 등을 사진에 담고 나오면서 같이 있는 겟세마네의 정원을 찾았다. 겟세마네의 정원(Gardon of Gethsemane)에서 올리브 나무들을 바라보며 가이드북의 그림에 나와 있는 그 나무를 찾아 사진을 찍고 다른 나무들도(옛부터 내려온 8그루의 나무, 수령이 2000년은 훨씬 넘었을) 사진에 담고 나오며, 막달라 마리아 교회와 함께 사진 한 장.

  교회앞으로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라이온 문을 통해 들어가고 있었으며 황금의 문은 닫혀 있었다.

  키드론 계곡으로 내려오며 압솔롬 탑(The Pillar of Absalom) 앞에서 전체 모습을 담고(실제로 하나의 바위를 깍음). 계속 걸어 계곡을 지났다. 계곡 주변으로 많은 집들이 있는데 유적지 위에 그대로 다시 집을 지은 형태였고 아래를 파면 그곳이 바로 유적지였다. 그곳에서 한참을 헤메다 위쪽으로 올라오며 시온문 쪽으로 향했다. 다비드 왕의 무덤에 들러보고 나오며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앞에만 갔다가 .... 그냥.. 최후의 만찬실을 둘러보고 나왔다. 입구에서 방명록을 적고 헌금을 하라는데 그들은 그 다비드 왕의 무덤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며 헌금도 없다.(즉 사기꾼 조심, 속아서 돈을 줬다가 깽짜 부리며 돌려 받았다.)

  그곳에서 여행중인 한국인 여자 분을 한 명 만났지만 이내 헤어져 다시 성문 안으로 들어왔다. Zion Gate St.를 따라 걸으며 분위기를 느껴보았는데.. 흥미롭긴 하지만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다. Armenian Library를 지나서 ARMENIAN Orthodox Patri Archate Road를 지나고 Jaffa Gate까지 왔다. Information Center에 들러서 지도를 구했다.(판매하는 지도는 9쉐켈, 그냥 나눠주는 다른 작은 지도도 있다. 광고지의 일종인데 뒷면에 지도가 상세하다)

  지도를 받아들고 어디를 갈지 한참을 고민했다. 일단 외곽을(올리브산) 갔다 왔으니 다음은 어디로???? 혼자 오면 이게 고민이다. 그래도 성벽순례를 하기로 했다. 학생 할인하여 6쉐켈을 지불하고 성벽에 올랐다.(일반 12쉐켈) Jaffa Gate에서 시작하여 성벽을 따라 걸었다. 그 옛날 이 성벽을 사이에 두고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이 성벽을 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지 생각해 보았다.

  북서편의 New Gate 위에서 사진 1장을 찍고(노부부에게 카메라를 부탁하고 반대쪽에서 포즈를) 계속 걸어 차례대로 Damascus Gate, Herod's Gate, Lion's Gate 까지 걸었다.

  도중에 Herod's Gate까지 거의 다 왔을 때 키부츠 Ein Hashrosha에서 같이 지냈던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온 '빅도르'를 만났다. Damascus Gate까지 돌아가서 손을 잡고 반가워하다가 Ein에 있는 Nike와 연미에게 쪽지를 전해달라 하고 헤어졌다. 그는 그의 어머니와 같이 예루살렘 여행을 온 것이었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주변을 내려다보는 것이 그 옛날로 돌아가는 길이다. 가장 권할 만한 코스이다. 라이온 문 위에서 바라보니 많은 무슬림 사람들이 모리야 언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성벽 순례 코스도 그곳이 마지막이라 내려와서 모리야 언덕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마침 내가 갔었던 금요일은 이슬람 중요 행사가 있는지 일반인들(외국인)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부족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GHAZALI SQUARE에서 돌아나와 Lion's Gate Road를 걷다가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Bab Huffa 거리를 지나서 베스테다 연못(Bethesda Pool)을 구경하러 갔다. 입구를 찾지 못해서 근처 담(공터)에 올라 안쪽 연못을 넘어다 보았다.(아쉬움)

  다시 길을 돌아 나와서 Shalar Ha'aryot St.를 지나서 "비아돌로로샤(Via Dolorosa ; 예수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간 길)"를 따라 걸었다. 몇 개의 교회를 지나치고 들어간 곳이 채찍질 교회(Chapel of Flagellation) 였다. 안에 들어가니 두어 명의 사람들뿐이었고 오른쪽(건물의)으로 옛날 기둥 건축 양식과 그 앞으로 당시의 모형(아마도 당시의 예루살렘 성터)이 전시되어 있었다. 필름이 얼마 남지 않아서 한 장만 찍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낮이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바쁘게 돌아다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하루정도 더 머물며 돌아다닐걸 하는 생각도 든다. 에케 호모 교회(Ecce Homo Church)와 세인트 안나 교회(Church of St. Anne), Condemnation Chapel, 베로니카 교회(St. Veronica Church)를 그냥 지나치며 밖에서만 구경했다.

  계속 Via Dolorosa를 따라 걸어 성 분묘 교회 근처까지 왔다가 주변도 구경삼아 돌아다녔다. 성분묘교회 뒤쪽 길로 El Khanka St.까지 와서 왼쪽으로 꺽어서 Christian Quarter St.로 와서 한번 더 왼쪽으로 꺽으니 세인트 존 예배당이 보였고, 그 옆으로 십자군의 문이란 것이 나타났다. 어젯밤에 왔을 땐 삼점도 문을 닫았었지만, 지금은 문을 열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성분묘교회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교회의 앞뜰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옆으로 길게 복도가 있는데 그 정면에 관 크기의 대리석이 놓여 있고 장식이 되어 있으며 그 너머 정면의 벽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과 제자들에게 이르는 장면 등 3개의 장면을 나타내는 그림이 있다. 그곳에서 왼편으로 들어가면 예수의 무덤이 나타나는데 그 위에 대형의 집이 만들어져 있다. 사각의 형태인데 우리의 상여의 큰 형태랄 수도 있다.

  이곳은 크리스챤의 여러 종파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는데 사각 건물의 각각에 각 종파의 예배소가 있다. 뒤쪽으로 돌아가니 그쪽은 그곳에 있는 사람은 이집트 사람이었다.(일단 가르쳐주는 이집트 식으로 참배하고)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가이드북의 뒤쪽 그림을 보고 이집트라고 얘기했다. 자기도 이집트인. 그리고 이곳에는 이집트인이 많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현다이를 말했다. 그는 현대와 대우, 기아를 알고 있었다.

  한참을 그와 있다가 헤어지고 앞쪽으로 와서 무덤 입구에 섰다. 좁은 통로를 통해서 약 한평(모저람, 겨우 두명 정도 들어갈) 크기의 무덤안으로 들어갔다. 좁아서 사진을 찍기에도 힘들었다.

  성지순례도중 성벽 위에서 만난 사람이 있다. 빨간색 스웨터를 걸친 남자였는데 아마도 유럽의 여행객. 성벽에서도 몇 번이나 마주치고 그리고 비아돌로로샤를 걸을 때도 마주치며 인사하고, 그리고 내가 그 좁은 예수의 무덤 속으로 만난 단 한 사람도 그였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씨익 웃으며 하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감히 그 무덤 속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무덤 바깥으로 고개만 삐죽 내밀어 수녀님처럼 보이는 분에게 물어보고 OK!! 둘이 동시에 카메라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사진을 찍고, 실은 너무 가까워서 카메라를 머리 위쪽 벽에 대고 대강 각도만 맞추어서 셔트만 눌렀다. 그는 수동 카메라라서 렌즈를 갈아끼우고 이제 열심히 조작하고 있었다. 유유히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깥쪽 사진을 찍었다. 천장은 돔이었는데 매우 크고 높으며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어쩌면 성서럽고 황홀하면서도 조용한 분위기를 풍겼다. 나오며 입구 옆 계단을 올라가니 큰 사진의 모습이 나타났다. 제단 바로 앞쪽(바로 밑)에 지름 약 60~70cm 크기의 은쟁반 모양이 있고 그 가운데 지금 15cm 정도의 구멍이 나 있다. 그 지점이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졌던 곳이라고 한다. 그 은으로 원이 그려진 부분이 함께 드러나게 사진을 한 장 찍고 그곳에 엎드려 그 구멍속을 보았는데 아무것도...

  그리고 북쪽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 (골고다의 성당) 그 바로 밑의 붉은 대리석 판도 사진에 담았다.(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몸에 향유를 바르던 지점). 예전에 이곳이 언덕이었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깍아내고 쌓이고 언덕의 흔적은 없다.

  그 오른쪽 부분에는 어제 들렀기에 가지 않고 다시 예수의 무덤 앞에 돌아와서 그 앞의 예배당에 계란 반쪽을 세워둔 것과 비슷한 모양의 돌(잔모양으로 지름 약 50cm)을 사진에 담고 나왔다.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키를 높여 찍었다. 그 잔이 세계의 중심으로 불리어 졌다고 한다. 옛날 지도에도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고 한다.

  교회 밖으로 나와서 남은 시간 계획을 짠다고 앉아 있으니 아랍의 어린이들이 옆서를 사라고 옆에서 추근거렸다. (그들을 상대하지 말 것, 상대할수록 귀찮아짐. 그리고 길안내를 자청하며 괜히 길 가르쳐 준다며 돈을 요구한다. 약간의 시간을 소비하더라도 그들을 상대하지 말고 혼자 하는게 여행의 맛이 있다.) 아직 돌아보지 않은 아르메니아인 지구르 돌아보기로 했다.

  SUQ EL-KHAWJAT 거리를 지나서 다른 길로 갔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다행히 지나는 사람이 위험한 길이라 알려줘서 돌아나와 다시 길을 찾았다. 어젯밤에 지나간 길(HABAD St.)을 바로 옆(5m)에 하고 Jewish Quarter St. 쪽으로 걸었다. 첨에 Habad St. 쪽으로 걸었지만 유대인 집회가 있어서 옆길로 걸어간 것이다. 시간이 촉박해서 별 다르게 들러지 않고 거리를 활보했다. Habad St → Elmalek St → Ararat St → St. James St를 지나서 바깥의 큰길로 나왔다.

  Armenian Orthodox Patliarchate St.를 따라 Jaffa 문으로 오다가 다비드 탑에 오르기 위해 들어갔지만 학생 할인 요금이 20쉐켈이나 되었다. 책하고 요금차이가 나서 자세히 요금을 물어보았다. 일반 28(할인 20), 98년 25(17), 그 이전 책에 있는 것이 20(15)였다. 책의 내용이 오래된 것이었다. 아쉬운 김에 돌아 나오다가 성 주변만 서성이다 그 문 앞의 성문 위에만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돌아오기 위해 Jaffa Gate로 갔다가 내가 들러지 못한 New Gate로 오기로 했다. Information Center를 지나서 Latin Patriarchate St.를 따라서 걸었고 Bob El Jedid St를 지나서 New Gate를 통해 나왔다. 터미널로 돌아오는 길을 서둘렀다.

  약간의 지리를 알기에 먼저 주요 도로 길을 잡았고 시청, 분수대 시설이 되어 있는 시청건물을 가로질러서 걸었다. 시청사의 조경이 특이하게 잘 되어 있었다. 경찰서 앞을 자나서 Bell쇼핑몰 앞에 왔을 땐 필름을 살 곳이 없는게 아쉬웠다. 야외공연이 있었는데 환경학과인 나에게는 더욱 소중한 모습이었다. 사진에 담지 못한게 한스러울 정도로, 머리에 쓴 모자는 재활용품을 이용한 것으로 장식이 되었고, 어찌보면 우리 나라의 각설이와 비슷할 수도 있는데 복장이 모두 재활용품을 이용한 것이었다. 빈깡통과 피티병, 비닐, 필름통 등등. 작은 아코디언으로 연주하고 호루라기로 박자를 맞추는데 유럽 남부의 경쾌하蒥 리듬과 노래가 들어간 내용이다. 옆에서는 비디오 카메라로 찍고 있었고 나도 필름 파는 곳을 찾았지만 근처에서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상모돌리기 비슷... 장식들은 깡통을 연결해서 만들고 빈 플라스틱 병들을 연결해서 우리의 '상모'랑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빈 필름통 속에다가 뭘 넣었는지 소리나게 만든 것을 나눠주며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어울려 구경하다 시간에 쫓겨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아그리파스 거리를 거쳐서 '마하네 예후다 시장'을 거친 다음 야포 거리를 따라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다.

  금요일이라 차가 빨리 끊어지기에 오후 2시가 결코 빠른 것이 아니었다. ꕛ샨행 14시 15분 버스가 마지막 차편이었을 것이다. 29.3쉐켈을 지불하고 ꕛ샨행 버스를 타고 달렸다. 버스는 시내를 빠져나와 아랍인 지구를 지나고, 사막을 지나고 계속 북쪽으로 달리며, 요단강 계곡을 따라 달렸다. 오른쪽 옆으로는 요르단과의 국경 철조망이 보였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깐 들렀었고 바로 출발..

  막상 벹샨에 도착했지만 이젠 어떻게 키부츠까지 돌아가야 할지가 걱정이다. 금요일 오후라 시내 전체가 조용했고, 허허벌판에 세워진 터미널에는 사람이라곤 나 혼자 뿐이었다.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고, 구름이 끼어서 방향 구분도 되지 않았다. 쉐루트를 탈려고 해도 자동차 자체가 안보인다. 서쪽으로 생각되는, 그리고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북서쪽으로 길을 따라 걸었고 다행히 물어물어 AFULA 방향을 찾았다. 열심히 걸어 동네의 외곽까지 나왔다. 중간에 히치도 되지 않고 터벅터벅 어떤 소리만 나도 손을 내밀어 히치의 뜻을 내비쳤는데... 그런데 히치라고 한 것이 버스였다. 노선버스 였는데 정류장도 아닌데 운전사 아저씨가 태워 주었고(7.9), but 운전사와 나외엔 아무도 없었다(단 2명). AFULA 행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GEVA 까지도 가지 않지만 GEVA를 알고 있었다. 버스는 옆 키부츠 Ein Harod와 GEVA 사이의 북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그 방향으로 가는 버스였다. 기사 아저씨와 이야기하다 나보고 타이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Because 긴 수염 때문에. Ein Harod를 지난 다음 갈림길에서 내려 주었다. 저 앞쪽으로 키부츠가 보였다. 키부츠까지 튼튼한 다리로 걸어오며 가방속에 남아있던 오이하나를 씹어먹으며 걸어왔다.

  키부츠에 도착하니 쥬디와 키키가 황씨 아저씨(인성이) 기다린다고 마중나와 있었다. 나도 같이 키부츠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인성이와 같이 숙소로 왔다.

  ※ 1박 2일간의 짧은 일정이었다고 (다른 이는 너무 짧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크리스챤이 아닌 나에게는 여행의 목적이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가볼 데는 나름대로 다 가봤고 사진에 그 모습들을 담았고(공연 모습을 못 담은게 아쉬움) 밖에 나와 Hostel 이란 곳에서도 자봤고 나 스스로 좋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돈 아낀다고 너무 걸어다녀서 다리가 너무 아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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